
(사진= 左 허영생 공식 프로필 사진 / 右 ‘포에버영’ X 게시물)
[한터뉴스= 김연우 기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우연히 본 한 장면, 마음을 사로잡은 한 무대, 귓가에 맴도는 노래 한 소절만으로도 한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팬심은 무대 위 모습뿐 아니라 그 사람의 작은 장점까지 발견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어쩌면 짝사랑과 닮았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짝사랑과는 또 다른 관계다. 한 사람을 향해 이토록 오랜 시간 진심을 쏟는다는 점에서 덕질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16년간 한 가수를 응원한 팬의 탈덕문과 약 20년간 운영된 팬사이트의 폐쇄 소식이 잇따르며 스타와 팬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사진= 左 TOPSPOT PICTURES / 右 ‘최승현닷컴’ 게시물)
16년 팬도, 20년 팬사이트도 떠났다
최근 가수 허영생의 팬페이지 ‘포에버영’ 운영자 A씨가 16년간 이어온 팬 활동을 마무리한다는 내용의 ‘탈덕문’을 공개했다.
A씨는 탈덕문에서 약 6개월 동안 사비와 시간을 들여 생일 카페를 준비했으며, 행사 약 3개월 전 허영생 측에 방문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당시 허영생의 생일을 기념해 예정된 생일 카페는 자신이 준비한 곳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허영생이 생일 당일인 11월 3일 별도의 오프라인 행사를 마련하면서 두 행사의 일정이 겹쳤다. A씨는 자신이 준비한 생일 카페를 일찍 마무리하고 허영생의 행사장을 찾았지만, 현장에서 나온 발언에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허영생은 행사 말미 “감사하게도 생일 카페를 열어주셨다. 그런데 자꾸 오라고 하셔서”라는 취지로 말했다. 방문을 강요한 적 없이 문의만 했던 자신이 반복적으로 요청한 사람처럼 비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생일 카페 방문 여부보다 오랜 시간 준비한 행사와 자신의 마음이 가볍게 여겨졌다고 느낀 점에 실망해 팬 활동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만 이는 팬이 공개한 탈덕문에 담긴 입장으로, 허영생 측의 별도 입장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가수 탑의 팬사이트 ‘최승현닷컴’도 약 20년간의 운영을 마무리했다. 2006년 8월 문을 연 이곳은 지난 10월 9일 운영 종료를 알렸다. 당시 탑의 열애 인정 소식과 시점이 겹치며 온라인에서는 두 사건을 연결 짓는 반응도 나왔다. 운영진은 폐쇄 이유로 탑과 소속사의 소통 부족, 팬들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태도 등을 언급했다.
이후 탑은 11월 1일 SNS를 통해 팬사이트 운영진과 팬들에게 사과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랜 시간 보내준 믿음과 응원을 잊지 않겠다고 밝히며, 팬들의 사랑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겼다.
개인 팬의 탈덕과 장기간 운영된 팬사이트의 폐쇄. 두 사례는 형태는 다르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애정도 관계 속에서 경험한 실망과 소통의 부재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진= 탑 인스타그램)
팬심은 어디까지 노동이 될까
팬덤의 활동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아티스트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됐다. 앨범과 굿즈 구매는 물론, 온라인 홍보와 콘텐츠 제작, 생일 카페와 광고 이벤트까지 팬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이와 관련해 강신규·이준형 연구자가 2019년 한국언론학보에 발표한 논문 ‘생산과 소비 사이, 놀이와 노동 사이: 〈프로듀스 48〉과 팬덤의 재구성’은 〈프로듀스 48〉 팬들을 심층 인터뷰해 팬덤 활동의 양면성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해당 팬덤이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위한 놀이의 성격을 띠면서도 특정 상황에서는 홍보와 마케팅, 매니지먼트 등 연예기획사의 역할 일부를 대신하는 노동의 성격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팬덤 활동을 노동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팬에게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즐거움도 존재한다. 다만 시간과 비용, 노력이 투입되는 만큼 그 과정에서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자연스럽다. 팬덤의 활동을 단순한 소비나 자발적인 열정으로만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노력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진= ‘포에버영’ X 게시물)
팬과 스타의 쌍방향 관계
팬심은 언제나 같은 크기로 머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달라질 수도 있고, 관계 속에서 경험한 실망이 이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쏟아온 애정과 노력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한결같았던 응원도 끝을 맞을 수 있다.
반대로 스타에게도 팬은 단순히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만은 아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수빈은 2025년 7월 28일 대면 팬사인회에서 데뷔 초부터 자주 찾아오던 팬들이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아무 말 없이 떠난 팬들이 가끔 생각난다고 말했다. 현재 자신을 응원하는 팬 역시 언젠가 떠난다면 계속 기억할 것 같다는 마음도 전했다. 팬만 스타와의 시간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에게도 팬과 함께한 순간이 남는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때로 십수 년의 응원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시작된 팬심은 한 사람의 일상에 기쁨과 설렘을 더하고, 때로는 각자의 길을 걷는 이별로 끝나기도 한다. 함께했던 시간이 언제까지나 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는 없겠지만, 한때 서로에게 큰 의미였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좋아했던 시간과 그 마음을 기억하는 일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기를 바란다.
yeonwoo38@hante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