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K팝 기업들에 칼을 빼들었다. K팝 팬이라면 한 번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팬클럽에 가입했는데 기대했던 혜택이 없거나, 멤버가 탈퇴해 콘텐츠가 줄었거나, 사정이 생겨 중도 탈퇴하려 했지만 환불이 안 된다는 안내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불만이 법적으로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늘(10일) SM엔터테인먼트, 빅히트뮤직, 와이지엔터테인먼트, 빌리프랩, 큐브엔터테인먼트 등 18개 엔터테인먼트사와 위버스컴퍼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CJ ENM 등 6개 팬덤 플랫폼사, 총 24개 사업자의 팬클럽 유료 멤버십 이용약관을 심사해 8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을 자진 시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중도 탈퇴 시 사실상 환불이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것이다.
팬클럽 유료 멤버십의 가격대는 연간 2만 원에서 3만 원 수준이다. 위버스 입점 아티스트 기준 빅히트뮤직, 빌리프랩 등 하이브 계열 소속사의 아티스트는 연 2만 5000원,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는 연 3만 원이며, 그 외 기획사들은 2만 원에서 2만 1000원 선이다. 금액 자체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팬 한 명이 여러 팀의 멤버십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고, 위버스 디지털 멤버십 구독자는 2023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26년 1분기 기준 약 60만 명에 달한다는 지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기도 하다. 케이팝 시장이 7조 9000억 원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유료 멤버십 시장도 그 속도를 따라 커왔다.
문제는 이 시장이 커지는 동안 소비자 보호는 뒤처져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지적된 불공정 조항 중 가장 핵심은 환불 제한이다. 빅히트뮤직은 가입 후 7일이 초과하거나 혜택을 일부라도 이용한 경우 환불이 불가하다고 명시했고, 피네이션은 아예 "단순 변심에 의한 환불 및 탈퇴가 불가하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가입비 전액이 위약금으로 작동하는 구조였다.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아티스트 멤버의 탈퇴·교체로 인해 혜택이 달라지더라도 소속사 귀책이 없다면 환불이 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멤버가 바뀌어 내가 좋아하던 콘텐츠가 사라져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을까. 팬클럽 멤버십은 일반 구독 서비스와 달리 대체재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팬덤 활동을 하려면 그 아티스트가 입점한 플랫폼의 멤버십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음악방송 사전 녹화에 참여하고 콘서트 선예매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공정위도 이 점을 심사 배경으로 명시했다. 여기에 팬덤 문화 특유의 심리도 작동했다.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으로 가입하는 멤버십에 환불을 요청한다는 것은 팬으로서의 정체성과 충돌하는 느낌을 준다. 소비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감정적 구조가 불공정한 약관을 오래 묵인하게 만든 셈이다.
시정이 완료되면 가입일로부터 7일 이내에 이용 내역이 없을 경우 전액 환불이 가능해지고, 7일이 경과하거나 이용 내역이 있을 경우에도 위약금(가입비의 10%)과 이용액을 공제한 잔여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다만 환불 관련 조항은 사업자들이 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후 연내 시행할 예정으로,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팬덤 경제가 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지만, 그 안에서 팬이 소비자로서 보호받기 시작한 건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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