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하츠투하츠’, ‘그냥 이미주’, ‘문명특급’ 유튜브 캡처

 

시작은 갸루피스였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브이(V)를 만든 뒤 팔을 쭉 뻗어 셀카를 찍는 그 포즈. 갸루피스는 여성·소녀를 뜻하는 영어 속어 'Gal'의 일본식 발음 '갸루'와 평화·손가락 제스처를 뜻하는 'Peace(피스)'를 합친 일본어 표현이다. 그룹 아이브의 레이를 시작으로 한때 너도나도 따라 하던 포즈였지만, 이후 갸루는 한동안 국내 트렌드에서 자취를 감췄다.

 

갸루(ギャル)는 원래 1990~200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서브컬처로, 짙은 피부 태닝, 화려한 눈 화장, 금발이나 밝은 컬러의 헤어가 특징이다. 당시에는 기성 사회 규범에 저항하는 일탈적 이미지로 읽혔지만, 그 강렬한 개성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소환되고 있다.

 

재점화의 신호탄은 지난해 11월 유튜브 채널 ‘그냥 이미주’였다. 이미주는 홍대에서 갸루 화장·헤어·패션을 직접 체험한 영상을 올렸고, 이는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후 'K-갸루' 콘셉트로 다양한 갸루 스타일 콘텐츠를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화려한 갸루 메이크업과 유쾌한 캐릭터가 맞아떨어지며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에서 걸그룹 리센느의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갸루 스타일의 헤어·메이크업·코디에 특유의 말투까지 더해 등장해 '존재감 넘치는 갸루 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거제—야호!" 같은 유행어가 탄생하면서 시청자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이나 친구 이름을 넣어 따라 하기도 했다. 거제도 편에서 미나미가 낚시하는 원이 뒤편에서 파라파라(パラパラ, 19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클럽 댄스)를 추는 장면은 "거제에 시집온 갸루 아가씨 같다", "기죽지 않고 항상 열심히 하고, 한국어도 잘한다"는 반응을 이끌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된다.

 

걸그룹 하츠투하츠도 갸루 스타일로 찍은 릴스가 화제가 됐다. 캐나다 교포 출신 멤버 스텔라는 갸루 의상과 메이크업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고, 공식 석상에서도 갸루 포즈를 즐기며 갸루 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멤버 유하 역시 "하람(유하의 본명)이는 갸루의 계승자 같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과거 갸루가 일탈과 비주류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미적 콘셉트로 재해석되어 소비되고 있다. 이는 감성 카메라·디지털 필름 카메라 열풍과 맞닿아 있는 Y2K·레트로 감성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셀프 브랜딩이 중요해진 Z세대 문화 안에서 갸루 트렌드는 외형적 스타일을 넘어, 눈치 보지 않는 태도와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표현하는 내면의 자신감까지 함께 소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갸루의 재유행은 단순한 복고 열풍이 아닌, 자기표현 문화의 진화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