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i-dle 소연, 미연 인스타그램)

 [한터뉴스=김연우 기자] 가상의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춘다. 현실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연출을 선보이고, 팬들과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실존 아이돌 못지않은 성과를 거둔다. 한때 일부 마니아의 문화로 여겨졌던 버추얼 아이돌은 이제 K팝 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9일, 가상 그룹 K/DA가 신곡 ‘FIRESTARTER’를 발표하며 돌아왔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탄생한 K/DA는 i-dle의 미연과 소연을 비롯한 실제 아티스트들의 참여로 게임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었다. 2020년 ‘MORE’ 이후 약 6년 만의 신곡 발표는 가상 아이돌이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상이라는 형식만으로 팬덤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모델링과 음악적 실력, 가상 캐릭터의 한계를 강점으로 바꾸는 연출, 팬들이 캐릭터 너머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매력까지. K/DA와 플레이브, 이세계아이돌, 오위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버추얼 아이돌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 라이엇 게임즈)

 게임 캐릭터에서 음악 그룹으로… K/DA가 연 가능성

 K/DA는 게임 IP가 음악 산업과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POP/STARS’로 등장한 이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 아리, 아칼리, 이블린, 카이사를 가상의 음악 그룹으로 재해석했다. 게임 속 캐릭터에 실제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더하고, 뮤직비디오와 음악, 패션을 통해 독립적인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i-dle의 미연과 소연은 각각 아리와 아칼리의 보컬을 맡아 K/DA의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이번 신곡 ‘FIRESTARTER’에도 두 사람이 참여했으며, 소피 파워스와 미미 웹이 함께해 새로운 음악적 색깔을 더했다.

 K/DA의 특징은 게임 캐릭터가 음악 그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는 데 있다. 게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음악과 영상, 스타일을 확장할 수 있고, 실제 아티스트의 기존 활동과 별개로 캐릭터와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다. 게임 이용자와 음악 팬을 동시에 끌어들이며 기존 IP를 새로운 콘텐츠로 확장한 것이다.

 다만 K/DA는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처럼 정기적으로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이어가는 형태와는 다르다. 신곡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이벤트성 그룹에 가깝다. 그럼에도 신곡이 발표될 때마다 새로운 음악과 비주얼로 관심을 모은다. 지속적인 활동보다 프로젝트가 가진 상징성과 완성도를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인기 게임이라는 탄탄한 IP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버추얼 아이돌은 어떻게 팬덤을 형성하고 있을까. 플레이브와 이세계아이돌의 서로 다른 성장 과정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블래스트엔터테인먼트)

 현실의 한계를 무기로… 플레이브의 독보적인 경쟁력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이 대중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움직임을 구현하는 모델링, 뛰어난 보컬과 퍼포먼스, 자체 제작 역량이 결합하면서 완성도 높은 아티스트를 만들어낸다. 특히 멤버들이 음악 제작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은 그룹의 음악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다.

 플레이브는 버추얼이라는 조건을 제약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의 무대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과 움직임을 공연과 영상에 활용하며, 가상이라는 형식 자체를 연출의 가능성으로 바꾼다. 현실의 아이돌을 가상 캐릭터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버추얼 환경에서만 가능한 무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력은 성과로도 이어졌다. 플레이브는 2023년 데뷔 이후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며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상 캐릭터로 활동하는 그룹도 음악적 완성도와 대중성을 갖춘 아티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와 음악적 실력만으로 플레이브의 매력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팬들이 멤버들에게서 발견하는 인간적인 면모 역시 중요하다. 가상 캐릭터라는 외형 안에서도 멤버들의 성격과 감정, 관계성이 드러나면서 팬들은 캐릭터 너머의 사람을 느낀다. 플레이브의 경쟁력은 높은 기술적 완성도에 음악적 역량과 인간적인 매력이 더해진다는 데 있다.

 

(사진= 패러블엔터테인먼트)

 스타이면서 친구처럼… 이세계아이돌이 만든 친밀감

 플레이브가 모델링과 음악적 완성도, 독창적인 연출을 통해 버추얼 아이돌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이세계아이돌은 팬과 아티스트 사이의 거리를 새롭게 설정한 사례다.

 이세계아이돌은 인터넷 방송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들에게 방송은 단순히 음악을 홍보하는 수단이 아니다. 멤버들의 개성과 일상을 접하고, 실시간으로 반응을 주고받으며, 팬들이 그룹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주요한 공간이다.

 일반적인 아이돌 팬덤에서 스타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반면 이세계아이돌의 팬덤에서는 이러한 관계에 친근한 거리감이 더해진다. 팬들은 멤버를 무대 위에서만 만나는 스타가 아니라, 방송을 통해 꾸준히 접하는 익숙한 존재로 경험한다. ‘나의 스타’라는 감각에 ‘내 친구와도 같은 존재’라는 친밀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인터넷 방송에서 쌓인 친밀감은 음악 활동으로 이어지고, 음악은 다시 새로운 콘텐츠와 팬들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세계아이돌의 성장은 버추얼 아이돌이 전통적인 아이돌 시스템뿐 아니라 인터넷 방송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출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이세계아이돌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텔라이브처럼 인터넷 방송과 버추얼 캐릭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 버추얼 그룹도 등장하며, 인터넷 방송 문화와 아이돌 산업의 경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사진= AMA엔터테인먼트)

 버추얼 아이돌은 새로운 활동의 무대가 될 수 있을까… 오위스

 버추얼 아이돌의 가능성은 팬덤을 만드는 방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존 아이돌 산업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마주하는 제약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올해 데뷔한 버추얼 걸그룹 오위스(OWIS)는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만한 사례다. ‘Only When I Sleep’의 약자인 오위스는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동한다.

 오위스는 멤버들의 실제 정체를 둘러싼 추측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온라인에서는 이해인, 이루리, 아도라, 류수정, 지니 등의 이름이 멤버들의 실제 정체와 관련해 거론됐다. 다만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추측이며, 멤버들의 신원을 단정할 수는 없다.

 주목할 점은 정체를 둘러싼 관심보다 버추얼이라는 형식이 열어줄 수 있는 새로운 활동 경로다. 아이돌 산업은 치열한 세대교체와 나이·외모에 대한 평가 등으로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버추얼 아이돌은 캐릭터의 외형과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실제 인물의 외형 변화가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존 활동을 마친 아티스트가 음악과 무대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거나, 이전과 다른 정체성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버추얼 형식이 활동 수명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인력의 노동과 건강, 제작 비용, 기술적 제약 등은 여전히 고려해야 한다.

 오위스가 버추얼 아이돌로서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데뷔 초기의 화제성을 지속적인 팬덤으로 연결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모델링과 움직임 등 시각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이어지는 만큼, 캐릭터의 매력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고 음악과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새로운 형식 자체가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그 관심을 장기적인 팬덤으로 발전시키려면 꾸준히 기대할 만한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블래스트엔터테인먼트)

 가상이라는 틀을 넘어… 팬덤의 새로운 경험으로

 버추얼 아이돌의 역사는 가상이라는 형식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2025년 데뷔한 버추얼 걸그룹 라피드아이(RapidEye)처럼 다양한 프로젝트가 등장하는 가운데, 모델링과 자연스러운 움직임, 음악적 완성도는 팬들의 몰입을 이끄는 기본 조건으로 꼽힌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한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만으로 지속적인 팬덤을 만들기는 어렵다.

 플레이브가 음악적 실력과 독창적인 연출에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고, 이세계아이돌이 팬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팬덤을 형성하듯, 팬들이 캐릭터 너머에서 애정을 느끼고 관계를 이어갈 이유가 필요하다. 팬덤은 완성된 캐릭터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콘텐츠와 소통을 통해 캐릭터를 알아가고, 함께 경험을 쌓으며 자신만의 애정과 추억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깊어진다.

 앞으로 버추얼 아이돌의 경쟁력은 현실의 아이돌을 얼마나 비슷하게 재현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가상 캐릭터로만 구현할 수 있는 무대와 연출, 세계관을 활용한 서사, 팬들이 참여하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콘텐츠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각적 완성도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겠지만, 결국 팬덤을 지속시키는 것은 캐릭터를 통해 어떤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상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그 특성을 활용할 때, 캐릭터는 단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팬들이 그 세계를 알아가고 함께 추억을 쌓을수록 버추얼 아이돌은 현실의 아이돌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적인 팬덤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버추얼 아이돌의 미래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데 있기보다, 그 경계를 활용해 팬들에게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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